우리나라에 컴퓨터가 들어와 우리나라에 맞게 OS를 정비하고 시스템을 만들어가던 과정도 벌써 50여 년이 넘었습니다. 오늘 기사에서 볼 수 있는 키보드 자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쇄 원고를 쓰기 위한 타자기에서 시작된 키보드 자판은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더욱 편리하게 타자를 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의 방식으로 편리하게 자판을 입력하던 것과 다르게 30~40년 전만 하더라도 키보드의 표준이 변화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어린 친구들이 컴퓨터를 배울 때 자판을 2가지 방식으로 배우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키보드 자판 표준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컴퓨터를 통한 기술발전
19세기 후반에 개발된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의 기수로써 인류의 문명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모시켰듯이 20세기 후반에 일어나기 시작한 정보 혁명에서는 컴퓨터가 바로 기수 역할을 하면서 미래의 모습을 놀랄만한 세계로 변모시킬 것이 기대되고 있다. 따라서 컴퓨터의 사용이 바로 미래 사회로 진입하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며 사회 전반에 걸쳐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이렇게 중요한 컴퓨터를 이용함에 있어서 우리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키보드의 글자 배열이다. 사람의 심리는 편하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다. 또 모든 것이 이에 맞추어 만들어지고 개선되어 왔으며 이런 노력이 일의 능률면에서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이렇게 볼 때 컴퓨터에 있어서 키보드의 글자 배열에 관한 문제는 자뭇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는 곧 컴퓨터 사용의 최전선으로 키보드의 자판 배열은 입력속도에 관계되고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며 글자를 기계화하여 보다 문명화된 사회로 진행시키기 때문에 자판 구조는 합리적으로 설계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럼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키보드의 한글 문자 배열은 어떠한가?
두벌식으로 표준화되었던 85년
지난 85년 정부에서는 키보드 및 타자기의 자판 배열을 두벌식으로 통일시켰다. 이전에는 세벌식과 네벌식이 병행하여 사용되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세벌식과 네벌식의 단점만을 모은 현재와 같은 두벌식 글자판을 표준으로 제정하였다. 두벌식이란 자음 한벌과 모음 한벌로 자판을 배열하여 한글의 기본 체계인 초성과 중성과 종성을 무시하고 초성에 사용되는 키로 받침까지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이 방식은 글자를 입력하면서 초성인지 받침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며, 키보드에서 입력되는 글자가 즉시 모니터에 나타나지 않아 키보드와 모니터를 수시로 들여다봄으로써 속도가 떨어지고 오타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단점을 안고 있다. 또한 윗글자를 칠 때 누르는 쉬프트 키의 사용 빈도를 보면 예를 들어 국민교육헌장을 두벌식으로 입력할 때는 186번을 입력하지만 세벌식은 6번만 누르면 되어 두벌식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두벌식 자판은 자음을 왼쪽에 배치하여 초성과 종성(받침)을 모두 왼손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오른손잡이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왼손의 부담이 많아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된다. 또한 같은 두벌식이라는 컴퓨터 자판과 타자기 자판에서도 서로 배열이 달라 학교에서 타자를 배우고 회사에서 컴퓨터의 자판을 치려면 다시 배워야 하는 낭비를 가져오고 있어 사무자동화는 먼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두벌식은 두 손가락을 가지고 콕콕 치기에(이것을 닭이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치킨 콕(chicken cock)이라고 비웃는다) 적합한 자판이다.
두벌식과 세벌식의 표준화 논쟁
그동안 국내에서는 이런 비합리적인 두벌식에 맞서 한글의 구성 원리에 맞추어 고안된 세벌식 자판의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세벌식은 받침까지도 자판에 따로 배치하여 두벌식보다는 자판이 많아(두벌식:33개, 세벌식:45개) 자판 익히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다. 실제로 두벌식 자판을 오랫동안 사용했든 프로그래머인 박응호 씨는 세벌식으로 처음 바꾸고서는 자꾸 두벌식 자판이 떠올라 애를 먹었지만 하루에 30분씩 약 열흘 간 연습하니 손에 익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똑같은 문장을 입력하는데 두벌식보다 약 30% 정도 시간을 절약하고 있다고 한다. 한 편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세벌식 자판을 표준으로 정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획기적인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소프트웨어는 타자교사와 글자꼴 편집기와 한글 통신프로그램이라는 것으로 현행 두벌식 자판에서 세벌식 자판을 익힐 수 있으며 컴퓨터 내부의 한글코드와 관계없이 데이터 호환이 가능하여 세벌식으로 자판을 통일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년 들어 문화부의 이어령 장관과 과기처의 이상희 장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과거의 형식적인 개정 검토와는 달리 현행 글자판을 대대적으로 공업진흥청 등 관련 부처와 구체적인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도 100여 년 이상을 사용했던 쿼티 타자기가 새로 개발된 드볼락 타자기에 비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하여 지난 82년 드볼락 타자기로 과감히 바꾼 사례가 있었다. 이것을 볼 때 과학화에 있어서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서슴없이 버리는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기자의 원과는 다르게 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두벌식이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세벌식에 대한 논의는 사회적으로 거의 사장된 것이나 다름없이 두벌식 자판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왜였을까요? 바로 익힘의 어려움이었습니다. 현재도 세벌식과 유사하게 사용되고 있는 속기사 자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자격증이 따로 있고 속도와 피로도라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결국 두벌식이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며 세벌식에 대한 개발과 연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앞서 기사에서도 말했듯이 기술의 발전으로 현재는 음성인식만으로 키보드의 여러 부분을 대체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두벌식과 세벌식에서 벌어지는 논쟁 자체가 무의미 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