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ABS라고 불리는 로봇 심판이 큰 화두입니다. 심판의 오락가락하는 판정에 불만이었던 것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한 ABS는 미리 설정된 구역에 맞게 스트라이크와 볼을 자동으로 판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도입되자 현장을 비롯하여 팬들도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활발한 논쟁이 이루어지는데 이렇듯 스포츠에 컴퓨터가 활용되는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있었던 일
9회 말 2사 만루 상황 내셔널 리그 플레이 오프 마지막 결승전이 열리고 있는 쉐(Shea) 경기장에서는 원정 팀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뉴욕 메츠 팀을 1:0으로 이기고 있다. 스탠드를 꽉 메운 관중들은 스태튼 섬까지 들릴 정도로 “Dar-ryl! Dar-ryl!”라고 환호한다. 키가 큰 홈 팀의 에이스 타자가 더그아웃에서 의미심장한 큰 걸음으로 타석에 들어선다.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말없이 마운드에 서 있던 오렐 허쉬저는 갑자기 3루 심판에게 타임을 요구한다. 허쉬저의 예기치 않던 행동에 당황한 다저스 팀 감독 티미 라소다는 덕 아웃에서 나와 팀의 에이스인 허쉬저에게 다가간다. “무슨 일이야 어디 다쳤어?” 쉰 목소리로 소리치는 라소다의 살결은 경기장 불빛 아래서도 잘 보일만큼 검게 그을려 있다. “아니요 좋아요” 감독을 안심시키는 허쉬저를 향하여 다저스 팀의 더그아웃에서 걸이 오는 사람이 라소다 감독의 머리 너머로 보인다. “잠깐 조사할 것이 있어서 그럽니다”라며 다가온 제3의 사나이는 로스앤젤레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나 선수는 아닌 것 같다.
다저스의 푸른 유니폼 등 뒤에는 번호 대신 C프롬프트가 쓰여 있으며 방망이나 글러브 대신 랩탑 컴퓨터를 들고 있다. 허쉬저는 화면을 올려놓고 시스템을 ON 시킨 후 STRAW 파일을 찾는다. “바로 이거야! 티미, 여기 좀 봐요” 허쉬저는 화면을 가리키며 말한다. “나는 지난 두 시즌에서 스트로우베리와 33번 만났는데 첫 번째는 스트라이크 아웃시켰고 두 번째는 포볼(4 사구)로 걸이 나가게 했습니다. 세 번째는 그가 단타를 때렸지요”라며 “주로 나는 변화구와 슬라이더 싱커로 그를 상대하였는데 6개 중 5개의 안타는 직구가 맞은 것이에요.” 싱커는 타자 가까이 에서 갑자기 가라앉듯이 떨어지는 변화구이다. “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 속도가 떨어지면 아마 커브라고 생각하며 신경을 곤두설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타석에 서있는 그에게 변화구를 던져 스트라이크를 따낼 예정입니다. 또 그가 마주할 나의 직구는 높고 바깥쪽으로 빠지며 위로 올라가는 변화구일 것입니다. 다만 7회 이후 아래로 떨어지는 싱커가 문제지요. 라소다는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허쉬저가 이야기한다. 이에 라소다는 훌륭하다며 절대로 교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심판이 플레이 볼 (Play ball)이라고 소리 지른다.
구단주들이 반기지 않는 야구와 컴퓨터의 만남
야구는 숫자 경기이다. 농구, 미식축구, 야구 중에서 특히 야구의 숫자는 모든 것을 대변해 준다. 1989, 1969, 또는 1949 시즌이라든지 타자의 경우, 타율 2할 8푼, 홈런 16개, 85 타점은 좋은 시즌이었음을 나타내주며, 투수도 16 ~ 18승, 방어율 3.35 정도면 그 명성으로 인해 시즌이 끝난 후 다음 계약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듯 야구에서의 숫자는 성적의 확실한 측정이며 숫자인 유용한 데이터는 야구와 컴퓨터 사이를 연결시켜 준다. 그러나 야구는 모든 경기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극적인 변화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스포츠로 무드빌(MudviIIe)에서 맺어진 컴퓨터와 야구의 결합이 정말 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으로 야구에 컴퓨터를 도입한 사람은 빌 제임스(Bill James)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키가 크고 때론 턱수염을 기르는 캔자스 평원의 개척자다운 제임스가 야구에 있어서 컴퓨터 혁명의 모세라 할 수 있다. 비록 프로그래밍에 대한 실력이나 키보드를 다루는 솜씨에 대한 것은 아닐지라도 생각의 독창성이나 자식의 정확성을 볼 때 제임스는 명예의 전당에 기록될 만하다. 1977년 처음 출간하여 친구나 동료 등 소수에게 배포한 Baseball Abstract 연간지에서 제임스는 야구의 신성불가침한 방식에 도전하는 새로운 방법인 컴퓨터의 도입을 제시하였다. 또 일터를 미국 야구연구소를 본떠 세이버 메트릭스 (Saber Metrics)라고 이름 붙였다.
야구에 새로운 방법이 시도된 초기에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고 능숙하게 조작하는 방법과 새로운 방법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였다. 또 방대한 정보를 저장하고 소화할 새로운 기구를 요구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제임스가 세이버 메트릭스에서 일하는 동안 컴퓨터의 사용이 그렇게 유용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의 편견 없는 접근이 야구에 컴퓨터 시대를 낳게 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 오늘날 모든 메이저리그 팀들의 사무실에는 PC와 대형컴퓨터들이 연결되어 있어 신인선수의 스카우트는 물론 일류 선수들과의 연봉 계약 협상 때에도 중재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입장권 판매를 집계하고 문서들을 워드 프로세서로 이용하여 작성한다. 하지만 완고한 전통주의자들이 지명 타자를 보는 것과 같이 오늘날의 많은 구단주들은 아직도 컴퓨터를 마지못해 수락하는 형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스포츠에는 컴퓨터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MVP와 올해의 선수 그리고 허쉬저와 컴퓨터
오렐 허쉬저가 1988 월드 시리즈에서 슈퍼스타로 발돋움할 때 그가 투구 기록 카드를 작성하고 전략을 세우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결국 그는 돈 드라이스델(Don Drysdale)의 20년 기록인 58이닝 무실점 투구를 깨트리게 되었으며 2.26의 방어율로 26승의 기록을 세워 사이영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또 플레이 오프 전과 두 월드 시리즈에서 메츠 팀을 상대로 완봉승했으며 이 시즌이 끝난 후 MVP로 선정되었다. 더욱이 그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Sports Illustrated)가 꼽은 올해의 선수로 지목되었다. 허쉬저는 절대로 공에 침을 바르는 변화구나 심판을 매수하는 비열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컴퓨터를 이용할 뿐이다. 1989년 봄의 문턱에서 가진 플로리다 베로 해안의 인터뷰에서 그는 컴퓨터 사용에 관해서 말하지 않은 점을 사과하였다. 다저스의 봄 훈련소는 메츠 팀이 훈련하는 세인트 루시에(St. Lucie) 항구에 비하면 야구의 천국이다. 베로 해안의 어린이들은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새끼 오리들처럼 허쉬저의 뒤를 따라다닌다.
“복잡해할 것 없다. 아주 단순하니까. 아마 메이저 리그 팀들은 모두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라소다 감독은 허쉬저가 클럽회관을 항해 어슬렁거릴 때 내야수와 타자 그리고 포수 그룹을 모아 놓고 풍부한 음성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단순하다” 짧은 바지와 다저스 팀의 티셔츠로 갈아입고 나온 허쉬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모든 경기의 한 투구 한 투구를 모두 도표화하였다. 그런 다음 내가 던진 모든 종류의 투구에 대해 스스로 점수를 매겨보았다. 이것은 조금도 상상이나 추측이 아니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두려웠다.”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데이터를 입력하여 이루어진 실질적인 훈련이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또 그것은 나를 운동에만 집중시키는데 도움을 주며 오랫동안 머릿속에 박혀있다.”
다저스 팀은 지난해 가장 우수한 팀이었으며 월드시리즈 우승 팀이기도 하다. 또 이 팀은 오랫동안 가장 진보적이고 창조적인 집단으로 평판이 났다. 확실히 그들은 컴퓨터의 사용과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정보를 사용하는 메이저 리그 팀들 가운데 선구자이다. 따라서 다저스 팀은 컴퓨터가 회계 사무소에서 계산에 사용된다는 등의 컴퓨터에 대한 달콤한 유혹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단지 야구 정보 서비스(Baseball Information Service)에서 보내온 자료를 사용한다. 1988년에도 메이저 리그 집행부였으며 다저스 팀 집행부 부위원장인 프레드 클레이리는 필요한 미디어의 서비스 차원에서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라소다 감독의 생각은 “선수들의 연봉을 산정할 때는 통계 데이터를 중요시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들 자신을 어떤 숫자로 묶어 놓으려는 것은 걸고 아닙니다. 물론 클레어리도 “무거운 짐만 되지 않는다면 통계 데이터는 매우 가치 있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컴퓨터 사용이 빚어낸 야구의 진리
1988년 월드시리즈 승리자들은 대부분 컴퓨터로 기초 자료를 만들어 놓고 있다. 다른 야구팀들의 상황은 어떤가? 어느 팀이 보다 컴퓨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가? 비록 PC 사용이 각 팀마다 크게 다르다 할지라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1. 컴퓨터의 사용 능력과 야구 성적은 무관하다.
진보된 야구팀 중 STATS 시스템을 도입한 시카고 화이트 삭스(White Sox)와 텍사스 레인저스(Rangers)와 BACball 시스템을 도입한 필라델피아 필리스(Phillies)와 애틀랜타 브래이브스(Braves)의 1988년 메이저 리그 26개 팀의 승패 비율은 21, 22, 24, 25번째였다. 이로써 승리는 고통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경기하는 선수들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2. 컴퓨터가 산출한 데이터 적용은 내야수나 외야수의 수비 협력에서 이루어진다.
양키스(Yankees) 팀은 코치 한 명을 신문 기자석에 배치한 후 인쇄된 세부 항목에 맞게 상대 팀 타자의 공치는 위치와 방향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자기 팀의 덕 아웃으로 자료를 보내 수비의 위치를 조정하였다.
3. 희생 번트는 서서히 쓸모없는 방법이 될 것이다.
희생 번트는 득점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사용하는 전략으로 100년 동안 감독들은 요구해 왔다. 하지만 누구나 좋지 않던 일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컴퓨터가 산출한 숫자 상으로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4. 숫자에 매달리는 일은 이제 끝났다.
야구를 중계방송에서도 이제 사람들은 그전에 사용하지 않던 통계 자료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모든 사람들도 야구장 요소와 출루율에 관해서 말을 한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야구 방식이다. 한편 우수한 팀이라고 꼭 PC를 잘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장타력 있는 타자로 유명한 메츠 팀에서 컴퓨터는 부적격한 선수들을 해고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휴스턴 애스트로스(Houston Astros) 팀에서는 절대적인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저조한 승률을 기록하는 팀에서는 새롭고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무조건 PC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컴퓨터의 효과를 잘 아는 영파워의 움직임이 활발
야구와 컴퓨터가 잘 결합되기 위해서 야구 클럽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대해 편협성을 비려야 한다. 원정 시합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원정 팀은 야구 정보 시스템으로부터 투수와 타자 간의 상대 전적 자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야구 컴퓨터시대를 연 초기 인물 중 스티브 만(Steve Mann)은 “가장 좋다는 시스템조차도 각 팀들이 진단기구로서 사용할 수 없다. 오른 손잡이 타자가 왼손 투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리그 중 같은 스타일의 변화구를 던지는 왼손 투수를 상대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기본이다. 따라서 26개 팀 자료가 모두 모일 때까지 선수들의 개별 수비가 실제로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냐고 묻는 질문은 답답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메츠 팀의 감독 데이비 존슨(Davey Johnson)은 컴퓨터를 이용한 기록 작성으로 지난 몇 년간 큰 평판을 받았다. 또 한때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팀들의 선구자였던 오클랜드 아틀레틱스(AthIetics) 팀 토니 라루사(Tony LaRussa) 감독은 컴퓨터의 지원으로 몇 년 전에 삭감된 연봉을 올리기 위해 새로운 계약을 맺으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레인저스(Rangers) 팀의 바비 밸런타인 감독(Bobby Valentine)은 컴퓨터를 사용할 미래의 감독들에게 아주 모범적인 인물로 비취지고 있다. 그러나 팀에 대한 진단을 하고 경기를 순조롭게 이끌기 위한 기구로서 컴퓨터를 이해하는 야구 경영자나 감독 혹은 실무자들의 수는 상당히 적다. 설령 이해했다 하는 사람들조차도 완전하지 못하며 변하는 정도도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영파워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다시 말해 컴퓨터가 그들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인식하고 있는 세대의 젊은이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주요 인물로는 현재 몬트리올 엑스포스(Montreal Expos)의 선수 담당자인 데이비드 돔브로스키(Daⅵd Dombrowski)가 32살이고 샌드에이고 파드레스(San Diego Padres)의 스카우트 담당자 랜디 스미스(Randy Smith)는 25살이다. 이 사실은 야구 컴퓨터 혁명이 일어나는 다음 대에 이들이 새 지도자로서 떠오를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투수회의가 끝나자 허쉬저는 프로그램을 뺀다. 라소다 감독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고 심판은 다저스 팀의 포수 사이어사 이아(Scioscia)의 왼쪽 어깨 위로 몸을 구부린다. 주자들도 준비를 하고 1루수 머레이가 찻잔 모양의 손동작을 하며 외야수 랜돌프(Randolph)에게 소리친다. 스트로우베리도 재차 타석을 고른다. 허쉬저는 투수판을 발 끝으로 건드리며 포수의 사인을 본다. 고개를 끄덕인 허쉬저는 3루 쪽에서 움직이고 있는 다익스트라(Dykstra)를 힐끗 본 후 몸을 움직인다. 팔을 들어 흔들면서 공을 던지는 허쉬저와 공이 타자에게 날아가는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 기사는 정보성 자료가 많으면서 마치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드는 기사였습니다. 이처럼 데이터를 활용하는 연구가 1970년대부터 진행되어서 지금의 데이터 야구가 발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에 톡톡한 몫을 했던 것이 바로 컴퓨터의 발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스포츠와 함께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